목사인 내가 세금 안내면서도 당당한 이유

2008년 2월 19일(화) 9:17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송상호 기자]

목회자의 세금 납부 등 개신교를 둘러싼 논쟁이 커져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6년에 있었던 '목회자 세금 납부 설명회' 모습.
ⓒ 연합뉴스


나는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임)의 집'이라는 초라한 시골 흙집의 목사다. '더아모의 집'은 정식 교회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도 교회나 교회 개혁에 별 다른 관심이 없다.

한 번도 목사사례비(개신교에선 목사 급여를 이렇게 부른다)로 세금을 내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나 있나 싶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목사'로 알고 있으니 이렇게 주절대본다.

내가 목사사례비를 받지 않은 사연

나는 목사사례비로, 즉 목사로서 종교 활동의 대가로 금전적인 급여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물론 9년 전까지 부산에서 교회 부교역자인 전도사로 있는 5년 동안 사례비를 받았지만, 세금을 안 내는 관습(?)에 묻혀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땐 종교인 세금 문제를 들어보지도 알지도 못했다는 면죄부(?)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종교인 세금 문제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2년 후에는 교회를 개척해 운영하는, 명색이 목사가 됐지만 처음부터 사례비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몇 안 되는 교인들이 가난해 헌금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개척 초기에 교회와 '일죽자원봉사문화센터('더아모의집'의 이전 공식 명칭)'를 운영하면서 막노동, 학습지교사일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대견'스러운 것은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받은 100만원 조금 넘은 액수로 가정도 꾸리고 교회와 봉사센터도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매달 어려운(?) 교회와 사람들에게 30만~40만원의 후원금까지 보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신기하다고 했지만, 마음 먹으니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 후원금 보내는 일에 아내가 흔쾌히 승낙하고 동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니까 몇 명 되지 않는 교인이 낸 헌금이 '전액' 좋은 일 하는 데 쓰였던 셈이다. 그나마도 가난했던 교인들이라 십일조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니 매월 헌금 액수로 보면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꼬박꼬박 냈던 나의 가정이 가장 많았다. 우리가 외부로부터 후원을 받아도 시원찮을 형편이었지만, 순전히 목회자 사례비를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벌어서 생활한 덕분이었다.

 

교인에게 월급 받는데 교인 눈치 안볼 자신 있나

그러다가 '교단 지상주의'와 '교권주의'에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그나마 방패막이었을지도 모를 교단마저 탈퇴하고 자유 교회('독립교회'라고 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 유수한 '독립교회'들이 합쳐 만든 '독립교회협의회'가 있어 자꾸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 때문이다)로 나선 게 목사 안수를 받고난 직후였다. 그야말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교회로 나선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사람이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진정으로 종교인다운 종교인이 되려면 교권이나 금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목사사례비를 받지 않으려고 한 것은 교인들로부터 급여를 받다 보면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교인들의 눈치나 살피거나 시류에 편승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 몇몇 목사들의 삶을 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물론 이것이 순전히 나의 '콤플렉스' 중 하나라는 것, 젊은 날의 객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행동했다.

그리고 목사를 무슨 하나님의 종이라느니 성직자라느니 하면서 특별하게 구분해서 받는 특권을 처음부터 자진해서 포기하려는 내 생각이 한 몫 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조그만 개척교회에서 누구나 겪었을 법한 어려움이었고, 다행히 잘 이겨낼 수 있었던 일이었다. 내 배경이 이랬다는 걸 말해야 나의 말이 힘을 얻을 것 같아 지나간 역사를 들먹여 보았다.

말 나온 김에 목사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목사를 '특별'한 존재나 '성스러운' 존재,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에선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지인들에게도 늘 말해왔지만, 목사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전문 종교인' 정도가 좋겠다. 소정의 개신교 신학을 이수하고 목회 실습을 거친 종교전문가 말이다.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목사를 바라보는 교인과 목사 자신의 인식 전환 없이는 목회자와 교회가 세금을 제대로 내게 할 수는 없다. 한국의 '평범'한 교인들에게 물어보라. 목사가 세금 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불경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교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목사님, 세금이라도 내고 당당하게 말씀하세요!

다시 목사가 세금 내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솔직히 말하자. 이제 세금 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세금을 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문제로 계속 회자되는 것이 쪽팔리지 않은가. 지나간 시대에는 '어떤' 명목으로든 목회자 세금이 감면됐다면, 이젠 바뀔 때가 됐다. 사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수입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게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보다 더 명쾌하고 확실한 대답이 어디 있는가.

세금 납부를 놓고 계속 버티는 목사들을 향해 일반 국민들이 뭐라 하겠는가. "에구 목사 XX들이 또 지 밥그릇 안 놓으려고 지랄들이네"라고 하질 않겠는가. 이제 목사도 세금 내고 당당해져라. 솔직하게 자진해서 세금을 내겠다고 하면 오히려 목사의 주가(?)도 올라 갈 것을, 왜 그리 추한 모습을 보이는지.

적어도 '전문 종교인'이 되려면 세금과 관련한 상식선에도 흠이 없어야 할 것이다. 목사를 성직자라고 하든 전문 종교인이라고 부르든 일반인과 구분되려면 이 사회의 평화와 정화 에너지를 공급할 만한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왜 왜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나. 거듭 말하지만 목사가 세금을 내야 떳떳하고 당당해진다. 그래야 이 사회에서 뜻있는 '쓴 소리' 한마디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종교인 세금납부에 대한 성경의 교훈

- 한상진 목사

요즘 종교인의 세금납부 문제가 넷 상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왕 거론된 만큼 종교인들의 세금납부에 대한 성경의 교훈이 어떤 것인가 나름대로 기고해 보면서 종교인 및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네티즌들에게 제안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필자는 현직 목회자임을 먼저 밝히며 이 지면에서 포괄적인 종교인보다 기독교에 국한하여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1.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납세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 교훈은 롬13:7의 바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하였다.

예수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12:17) 하심에서 성도의 납세는 당연한 것임을 교훈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법률적 이유 외에도 양심적 이유로라도 납세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이 주장에 어느 누구도 이론이 없을 줄 안다.

2. 근로기준법 제 14조

그런데 문제는 종교인들의 납세유무 문제이다. 근로기준법을 언급하기 전에 종교인이라는 포괄적 대상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목회자에 국한하여 말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14조 (근로자의 정의) 즉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다님의 글 중에 “탈세범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용어에서도 나타나듯이 ‘범인’(犯人)이다. 이들 외에도 합법적(?)으로 의무를 저버리는 집단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누구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종교인들이다.” 했는데 마다님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종교인을 범인 탈세범으로 몰아간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은 담임목사는 물론 동일한 일에 종사하는 부목사와 전도사까지도 포함된다. 목회자를 근로자로 인정치 않았던 그동안 국가의 법리적 판단이 옳았다.

실재로 목회자는 목적상 임금을 위해서 일하지 않아야 하는 직분이다. 성경에서 삯을 위해 일하는 목자를 삯군이라 하는데 삯군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경계 및 경멸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사실 근로자의 유무를 판단하는 일은 아주 싶다. 나의 극히 주관적이지만 목회자들이 삯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면 근로자가 아니지만 삯군이라면 근로자라고 말하고 싶다. 몇 년 전 교회노조가 출범했을 때 기고한 적이 있지만 교회노조의 출범은 그 자체가 부교역자를 일반직원의 경우처럼 삯군이라는 가정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기에 심히 우려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3. 오늘날 목회자는 삯군인가?

다시 언급하지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14조 근로자의 정의에 따라 교회 자체가 이익 창출을 위한 사업장이 아님과 동시에 목회자 역시 임금을 위한 직책이 아니기에 법적으로 보아서는 과세대상이 아님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여 일부 목회자들 중에는 고액사례금을 받아 사실상 봉사직으로서의 의미가 오해 받기에 이르렀다. 현재 영세민 수준의 사례금으로 혼자가 아닌 부부가 주야로 헌신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이요, 일부 고액사례금을 받는 자들도 섬기는 삶에 투자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일부 타락한 삯군 목회자들로 인해 사람들은 등을 돌리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종교인들의 납세문제가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4. 세상은 고도의 윤리를 원한다.

이상의 논지처럼 해명이 가능할지라도 오늘날 현대인들은 교회를 향하여 더욱 고도의 윤리를 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일부 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형편없는 집단은 아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눅11:33의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는 교훈은 망각한 체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마6:3-4)는 교훈에만 매달려 엄청난 사회봉사를 하고서도 비난만 받아왔음을 네티즌들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해 제 1회 복지엑스포를 관람한 사람들이 사회단체인 줄만 알았던 수많은 기관들이 기독교 봉사기관인 것을 확인하고 놀란 적도 있다. 이 주님의 교훈은 마음의 동기가 잘못 되어서는 안 됨을 지적한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벧전2:15)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자만하거나 부족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기독교는 더 많이 사회봉사 부분에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요구하기 전에 솔선수범하여 고도의 윤리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당시 국내제일의 대교회였던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의 청빈한 삶을 알고 있다. 한목사님은 교인들의 강력한 권유를 물리치고 움막에서 생애를 마감하며 유산도 남기지 않고 청빈의 삶을 보여주었다.

5. 솔선 납세할 것을 제안하면서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17:24-27)

이상의 교훈으로 미루어 목회자의 납세유무논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불필요한 반감과 오해를 불러오지 않기 위하여 필자부터 실천하면서 목회자가 앞장 서서 생활비에 한해 납세하는 것을 제안 하는 바이다.

글을 마치면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어떤 이는 왜 변명만 하느냐고 하겠고 어떤 이는 헌신적인 분들이 더 많은데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35년간 교단에 몸 담은 필자로서 아는 사실대로 썼다고 확신한다. 알지 못하고 악담을 퍼붓는 일부 악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있지만 그것보다 교회를 향해 당부 드리는 말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한국교회는 더욱 더 선행하되 선행을 말 아래만 두지 말라. 나아가 이제 세례 요한과 한경직 목사가 보여주었던 고도의 윤리가 아니라면 사람들의 호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도록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처럼 목회자에 대한 부업 허용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